
알렉산더 디제노바 (Alexander Digenova)
Konverse
·2025. 7. 9. 21:23
요즘 알렉산더 디제노바(Alexander Digenova)라는 브랜드의 부츠가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하나에 꽂히면 안사곤 못베기는 정신나간 소유욕 덕분에 또 디지털 세계를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며 부츠를 손에 넣으려 전 세계 편집샵과 세컨핸드샵을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전부 품절, 진짜 전부 품절이다. 200만원 가까이 되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세일을 가기도 전에 패션 힙스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보인다. 신진 디자이너의 부츠에 200만원을 투자하다니, 돈 많은 부자들은 참 많다. (뭐 나도 품절 안됐으면 사려고 했지만)
동명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디제노바가 전개하고 있는 이 브랜드는 홈리스, 그런지, 밀리터리 복식 그리고 펑크 요소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고. 공식 웹사이트의 컬렉션 이미지들을 보면 마치 1900년대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 그리고 2000년대 라프시몬스, 언더커버, 타카히로 미야시타 등등 내로라하는 일류 디자이너들의 시그니처 기법인 디스트로이드(Destoryed), 디스트레스드(distressed) 방식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감도높고(?) 날 것의 멋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뭐 이때 당시 디자이너에 영향을 안받은 지금 디자이너가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근데 이걸 단순하게 베끼는 것과 오마주하는 건 미묘하게 다르고, 또 엄청나게 다르다. 버질 아블로의 선구안이란 참 대단하다. RIP VIRGIL.
아무튼 디자이너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내 머릿속을 떠나지않는 그 부츠의 이름은 Moan Boots, 번역하면 '신음하는 부츠'다. Moan이라는 단어는 구글링하면 '신음하는', '신음소리'라고 한다. 영미권에선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디자이너가 제작한 모자에는 'County Morgue' 즉, '시신 보관소'라는 강한 뉘앙스의 단어가 쓰인 걸로 봐선, 또 같은 시즌에 제작된 후드티에는 굉장히 외설적인 (나체로 누워있는 여성) 포토가 전면에 박혀있는 걸로 봐선 이 부츠의 이름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척 건전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토익 900점 넘는데 이런 단어는 처음 본다.) 우선 실루엣은 발렌시아가의 스트라이크 부츠와 비스무리하지만 일본의 어느 온라인 편집숍에 기재된 소개란을 살펴보면 버니부츠(Bunny Boots) 즉, 설상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살짝 봉긋한 토박스와 힐캡, 아일렛 등의 특징적인 디자인을 보면 설상화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뭐 그래서 아무튼 부츠는 못샀는데, 재밌는 영상이 있어서 하나 퍼왔다. 바로 알렉산더 디제노바의 의류 디자인을 담당한 TUKATECH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유튜브 영상에 등장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 레이저 컷팅 기술이나 워싱 공법 등등 핸드메이드로 담당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을 이 회사의 기술력에 기대어 제작한 듯 보이는데 그래서 으레 그렇듯 '이 회사 기술력 짱이에요'라는 홍보 영상이겠지만, 조금 재밌었던 부분은 디자이너의 태도였다. 신진 디자이너라서 어쩔 수 없이 찍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꼈던 이 브랜드의 야마는 역시 컨셉일 뿐. 디자이너는 굉장히 진지하고 계획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하면, 부츠 사고 싶다는 것. 아니면 목걸이라도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