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낭만

Kon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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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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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로 인해 일주일 동안 러닝을 쉬었다. 중간중간 틈틈이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하긴 했는데, 확실히 러닝을 하고 안하고 차이가 확연하다. 일단 아무것도 안하면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점, 잡생각이 많아지면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점, 스트레스가 쌓이면 심술이 많아진다는 점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차도 바로 옆에서 뛰는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 가뜩이나 먼지를 많이 먹는데 어디서 날라온지도 모를 중금속과 모래가 뒤섞인 미세먼지까지 먹기는 싫어 몸에 안좋은 건 똑같지만 심리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걸로 골방에서의 심술을 일부분 해소했다.

그렇게 러닝을 멈추고 마스크를 끼고 간만에 걸었다. 내가 걷는 코스는 대학생이 참 많은데, 그게 당연하지. 왜냐하면 학교니까. 내가 나고 자란 곳에는 괜찮은 대학교가 하나 있는데 산책 코스도 가벼워서 나뿐만이 아니라 동네주민도 많이 애용한다. 대학교 내에는 인공호수가 하나 있는데 한 바퀴가 900미터에서 1킬로미터쯤 되기에 머리를 식히거나 비울때, 아무 생각없이 걸을때 아주 단순하게 내 운동기록을 짐작해볼 수 있어서 꼬꼬맹이 시절엔 가족과, 20대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그리고 러닝이라는 취미를 갖게된 지금은 나혼자, 그 길을 걸었고 달리고 있다. 그 길과 나는 나이를 같이 먹고 있다.

한 바퀴쯤 걸었을까. 나의 씀씀이를 회고한다. 난 왜 옷을 좋아해서 주제에 안맞게 비싼 옷을 샀을까. 앞에 과잠을 입고 걸어가는 학생을 보고선 대학생 시절에 아끼고 아껴, 세일 기간을 인내하고 또 인내해 지금보다도 훨씬 저렴한 옷을 사고 해맑게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내가 떠올랐다. 아 난 그때 낭만이 있었구나. 낭만은 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어느 웹툰작가의 비디오 쇼츠를 보고 깊게 공감했던 내가 흠모하던 사람, 흠모하던 옷, 흠모하던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나는 지금도 낭만이구나. 내 돈을 아낌없이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려진 결론은 사실 좀 뜬금없다. 나이가 들어가며 명품을 마련하고 싶은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낭만이 아닐까 하면서. 주제에 안맞게 명품을 사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으고 또 모아 자신의 연봉에 절반이 넘는 거금을 들여 명품을 사는 이유. 각자의 낭만을 잊지 않으려는 순수함이 아직 무의식적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어서가 아닐까하고.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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