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mac McCarthy (1933. 7. 20.-2023. 6. 13.)

Kon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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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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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생했지만 존잘의 기운을 감출 수 없는 비고 모텐슨

이제는 아주 예전이라고 말해야 하는, 그러니까 약 13년 전 풋풋했던 내 16살 중학생 시절 어떤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 주인공은 '반지의 제왕',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열연한 비고 모텐슨이었다. 짜증나게 잘생긴건 물론이고 분위기까지 씹어먹는 아우라가 보이는 엄청난 배우였다. 나는 그때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개봉했던 영화는 물론이고 배우들의 이름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 (영화광들은 알겠지만, 감독의 이름과 배우의 이름은 외운다는 개념보다는 외워진다는 개념이다. 그냥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저절로 들어간다)

 

뭐 근데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하여튼간 당시 비고 모텐슨이 주연을 맡은 그 영화가 한창 공중파 3사에서 열을 내며 홍보되기 시작했다. 그냥 한 문장으로 소개해보자면 '아버지와 한 아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당시 나는 영화 중에서도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내뿜는 영화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정교한 시각효과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 단어를 듣고는 출발 비디오 여행, 영화가 좋다, 접속 무비 클럽을 돌아가면서 그 영화의 예고 영상을 보기위해 TV 앞을 사수했던 기억이 얼핏 난다.

 

The Road, 2009

영화의 제목은 바로 <더 로드>. 그런데 이 영화에 더욱 이끌렸던 점은 소설 원작이라는 것에 있었다. 소설이라면 영화보다 먼저 결말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영화에서 러닝타임을 위해 뺄 수 밖에 없던 장면들을 심도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 소설을 무척 보고 싶었다.

 

그때 이 책을 구매했던 사람은 아마 이 문구가 기억날 것이다.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

'성서를 뛰어 넘은 판매량' (이건 정확하진 않다)

 

이 문구는 솔직히 개사기였다. 성서에 비견될만 한 소설이라니. 물론 난 무교지만, 무교든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간에 이 문구를 보고 어느 누가 구매하지 않겠나. 책 읽기는 싫어했지만 아주 가끔씩 흥미가는 책들은 또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이내 곧 아파트 상가에 있는 서점에 가서 <더 로드> 책을 구매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

 

그런데 또 다시 라떼 얘기를 해서 그렇지만, 내가 중학생 때는 학원을 새벽 1-2시까지 다니는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놓고 학원을 다니느라 바빠서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뜨문뜨문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솔직히 책이 어땠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물론 다 봤던 기억도 나고, 영화도 나중에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어땠는지, 영화 속 비고 모텐슨이 개고생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장면만 연상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근시일에 다시 보려고 계획 중에 있다.

 

Cormac McCarthy (1933. 7. 20.-2023. 6. 13.)

 

앞에서 대체 뭘 얘기하고 싶어하는건지 사실 쓰고 있는 나도 모르겠다. 늦은 밤에 생각나는데로 그냥 주저리 쓰고 있긴 한데, 원래 이야기하고자 했던 내용은 얼마 전 '더 로드'의 작가 코맥 맥카시가 별세했다는 것이다. 코맥 맥카시.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 중 한명이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더 로드'보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소설보다, 그 영화보다 '더 로드'를 먼저 떠올렸다. 아무래도 내가 봤던 소설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영화만 봤지, 책을 사서 읽어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코맥 맥카시를 '더 로드'의 작가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뭐 나는 지금 '더 로드'를 읽었다고 글같지도 않은 글을 쓰면서 텃세부리고 있긴 하지만, 그와 나는 어떤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저 멀리 한국에서 사는 30세를 바라보고 있는 한 백수 나부랭이가 코맥 맥카시를 추모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지금도 간혹 책을 읽다가 마음을 후벼파는 구절을 보면 그 작가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창조의 영역은 둘째치고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감탄만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남겨져야만 하는 것이고 읽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영풍문고에서 '핏빛 자오선'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이 책 또한 코맥 맥카시의 작품이다. 읽을 시간이 많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읽어보고자 한다.

 

엄청난 작품들을 남기고 하늘로 승천한 코맥 맥카시의 명복을 빌면서, 이 쓰잘데기 없는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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