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질 아블로 (1980.09.30 - 2021.11.28)
Konverse
·2021. 12. 22. 04:15

시험도 다 끝나고 과제도 다 끝나고 해서 써보고 싶었던 글을 게시하고자 한다.
'과학 콘서트’라는 책은 내 또래라면 읽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초등학생 때 MBC <물음표>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책을 읽읍시다>에서 처음 접했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어릴 때라 당연히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중학생 때 친구가 어디 시청인가에서 독후감 경연대회가 열리는데 거기서 1등을 하면 상금을 주는데 같이 써서 상금 한번 타보자고 권유해서 그때 이 책을 택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1장에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나온다. 케빈 베이컨이라는 영화배우와 그와 한 작품에 같이 출연한 영화배우(B)와의 관계를 1단계라고 치고, 그 배우(B)와 또 다른 작품에 출연한 배우(C)와의 관계를 1단계라고 하면 결국 케빈 베이컨과 또 다른 배우(C)와의 관계는 2단계 만에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어떤 배우와 케빈 베이컨이 몇 단계로 연결되어 있는지 찾는 게임이 바로 ‘케빈 베이컨 게임’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면, 나는 그와 3단계에 걸쳐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총 6단계만 거치면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이론을 도출해내게 된다. 결국 이 이론의 핵심은 지구가 아무리 넓어도 인간은 서로 매우 가까운 관계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단 이론 상이 아닌, 실제로 비슷하거나 동일한 경험을 하곤 한다. 이것이 매우 희박하고 우연적이지만 인생에서 적어도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친구의 친구가 내가 알던 사람이라든지, 친구의 친구의 부모님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직장 상사라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나도 이와 관련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의 친구가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뭐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했던 점은 그 친구들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사귄 친구였다는 것이다. 즉, 나는 한국에서 두명의 친구를 알게된 것이고 그 두명은 미국에서 서로 알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우연적 상황을 흔히 '세상 참 좁다'라는 표현으로 대처한다.
약 한 달 전인 11월 28일,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디자이너이자 역사상 흑인 최초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버질 아블로가 2년 동안 투병 해왔던 희귀병인 심장혈관 육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거 <파이렉스 비젼>에서는 티셔츠나 셔츠에 로고를 입혀 기존의 낡은 디자인의 관습에서 다른 차원의 것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디자인의 시대를 열었고, <오프화이트>는 그 연장선상으로 스트릿 패션과 럭셔리 경계를 넘나들었고, 그것의 정점으로 <루이비통>에서는 마침내 스트릿 패션과 럭셔리 패션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물론 패션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많은 논란도 따라다녔지만, 그는 패션계의 선구자이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혁명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와 정말 어떠한 접점이 없다. 그와 친했던 어떤 누군가들은 함께 했던 추억을 통해 그를 그리워했다면 나는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고, 오프화이트나 루이비통의 제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도 않을 정도로 교차점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청담 루이비통에서 개최한 사진전인 <Coming of Age>를 관람했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추모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것도 보잘 것 없는 대학생이 그를 추모한다는 것이 마치 아프리카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같은, 뭔가 가식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가까운 사이다. 나의 친구의 친구가 버질아블로 일수도 있는 것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의 직장상사가 버질아블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나와 6단계 이내로 맺어져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하고, 또 추모하고자 한다.
명복을 빕니다.
(1980.09.30 - 2021.11.28)